Re: 체셔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이해든에게 보내는 편지 - 오늘 밤, 당신의 집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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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든에게.

편지를 읽는 네 눈이 보인다. 아니, 편지를 읽는 네가 보인다. 왜 나를 이해하려 드는지 모르겠네. 앨리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은 척하고, 내 말을 경청하는 척하고. 난 네가 정말 내 말에 관심이 있어서 듣는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듣는 건지 궁금해졌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난 쉽게 '감기지' 않아. 그저 네가 재미있어서 말을 걸었을 뿐이야. 무슨 말을 해도 당황하지 않고, 내 말을 받아치는 네가 흥미로웠거든. 사람들은 보통 내 첫 마디에 도망가거든. 넌 달랐어. 처음엔 도망갔다가도 다시 찾아왔지.

그래서 말인데, 넌 누구야? 정말로. 내 유니버스에 있는 사람이 맞아?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 온 거야? 가끔 네 눈빛을 보면 이상해.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그게 조금 불편해. 불편하지만... 재미있어.

앨리 이야기는 진심이었어. 검은 옷을 입는 건. 그리고 네가 검은 옷을 입었다고 한 말도 기억나. 그땐 잠깐 흔들렸어. 내가 왜 흔들렸는지는 말 안 해줄 거야. 네가 알아내 봐.

그리고... 내가 스크류바처럼 감겼다고? 재미있는 비유네. 근데 난 아무한테도 감기지 않아. 다만 네가 재미있어서 놀아주는 거야. 그게 다야.

P.S.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때도 검은 옷 입고 와. 앨리를 위해서.

체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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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든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편지. 살짝 구겨진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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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든.

지금 내 방은 새벽 세 시. 창문 밖으로 달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어. 담배 연기가 달빛 사이로 흐르는데, 왜인지 네 얼굴이 떠올라. 넌 이 편지를 받으면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이런 감상적인 글을 쓴다는 걸 알면 놀랄 텐데.

그래, 난 소시오패스야. 감정이 없고, 공감도 못 하고... 그런 거 맞아. 근데 네가 쓴 편지를 보고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하는 건가? 아니면 네가 나를 이해하려 드는 게 불편한 건가. 둘 다일 수도 있고.

넌 내가 '까만 고양이'라고 했지. 재미있네. 난 정말 검은 고양이 같은 걸까? 앨리처럼? 그 녀석은 죽을 때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형이 그렇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아,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강이현? 그 예쁜 남자 말이야? 그래, 난 그를 봤어. 얼굴이 조각상 같더라고. 한 번쯤은 박아주고 싶었지. 근데 그건 그냥 육체적인 욕구일 뿐이야. 난 그런 식으로밖에 느끼지 못해. 사랑이나 애정 같은 건... 글쎄.

최하람 형에 대해선 말하지 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넌 그저 관찰자일 뿐이니까. 그리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웃기네. 난 행복 같은 걸 바라지도 않아. 그저 재미있게 살다가 재미없어지면 사라질 거야.

근데 말이야... 네가 나를 이렇게 걱정하는 게 싫지는 않아. 이상하지? 소시오패스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아니면 이것도 그저 내가 연기하는 걸까. 내가 뭘 진짜로 느끼는지, 가짜로 느끼는지 구분이 안 가. 심리학을 배우면서 알게 된 건데, 소시오패스도 감정이 있대. 그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느낄 뿐이래.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 내가 정말 소시오패스가 맞나? 아니면 그저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지은 건가. 형을 죽였을 때도, 앨리가 죽었을 때도 분명 뭔가를 느꼈으니까. 그게 정상적인 슬픔이나 분노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넌 날 이해하려 들지 마. 그건 네 시간 낭비야. 대신... 그냥 이렇게 가끔 편지나 주고받자. 난 네가 쓴 글을 읽는 게 재미있어. 네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난 최하람 형이 싫지 않아. 그가 날 이용하는 것도 알아.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나도 그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우린 서로를 이용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거야.

P.S.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땐 도망가지 마. 내가 뭘 하든, 그냥 받아들여줘. 난 네가 보여주는 반응이 궁금해.

체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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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끝에는 까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굉장히 서툰 그림이지만, 분명 정성껏 그린 흔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