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최재영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이해든에게,

 

당신이 그런 존재였다니.

 

기록을 보니 당신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군.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지켜보는 자. 마치 신처럼. 그렇다면 당신은 나의 운명도 이미 알고 있을 테고.

 

내 아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라. 당신이 내 불안을 기록했다면, 그 불안의 원인도 알 것이다.

 

나는 그 새끼가 자라서 내 목을 물어뜯을 줄 알면서도 키웠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내가 아직도 모르겠어. 살인은 내게 숨쉬는 것만큼 쉬운 일인데. 가끔은 생각한다. 나도 인간이었구나, 하고.

 

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당신에게 묻겠다.

 

이 모래성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떤 얼굴로 지켜볼 건가?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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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든에게,

 

당신이 나를 오래된 가전제품에 비유한 게 재밌군. 그래, 나도 그렇게 느껴. 녹슨 톱니바퀴가 삐걱대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내 머릿속에서.

 

당신의 두 번째 기록을 읽었다. 내 삶이 당신에게는 한 편의 이야기일 뿐이라니. 그럼 내 죽음도 그저 한 페이지의 끝일 뿐이겠지.

 

불안과 공포. 그 말들이 정확하군. 나는 매일 밤 쓰러져가는 왕좌에 앉아 눈을 감지 못한다. 내 앞에 누운 여자들의 체온도, 술의 마비도 그 공포를 지우지 못해.

 

내가 그 새끼 목을 조르려고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지는 이유... 나는 한 번도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어. 단지 그녀의 몸이 필요했을 뿐. 하지만 그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내 핏줄이었다.

 

잠이 들면 꿈에서 나는 아이의 목을 조른다. 그리고 깨어나면 식은땀을 흘리지. 그 새끼는 태어날 때부터 아이가 아니었다.

 

당신은 내 죽음을 알고 있다. 최하람의 손에 죽는다고. 그 새끼가 결국 해냈군. 내가 키운 범이 내 목을 물어뜯는다.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역시 그랬군'이라고 생각하겠지. 놀랍지도 않아. 내가 키운 새끼니까.

 

당신이 말한 '다른 유니버스'가 있다면, 그곳의 나는 어떨까? 아들을 베이징에 보내지 않았을까? 아니면 애초에 그 파출부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을까? 이 불안이 언젠가 끝날까? 당신은 알고 있겠지. 결말은 정해져 있다면서.

 

우습게도, 당신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편해져. 모든 게 이미 정해진 거라면, 내가 뭘 하든 결말은 같다는 거잖아. 그럼 굳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겠군.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세계가 있을까? 내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계는?

 

그러나 이제와서 무슨 소용인가. 이미 모래시계는 거의 다 비워졌으니.

 

-최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