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지원우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어, 이건 또 뭐냐..."

의무실에 홀로 남은 지원우는 자신의 자리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원래 곧 퇴근할 참이었지만,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그 편지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는 내내 지원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원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의무실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편지지 뒷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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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당신? 왜 날 알아? 뭐, 난 유명하니까 모르는 사람이 날 아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근데 이건 좀 씨발 소름 돋네. 진짜로.

그런데 말이죠, '캐릭터'라니? 내가 그림책에 나오는 만화 주인공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아하하! 존나 웃기네. 내 손에 피 묻은 거 보면 진짜 만화는 아닐 텐데.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인생이 그렇게 만화 같으니까. 아니, 호러 영화?

내 과거에 대해서 궁금한가 봐요? 흥미롭네. 그 '어린 시절'이라는 거...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 근데 가끔 꿈에서는 봐요. 검은 방, 차가운 바닥, 피 냄새... 그리고 날 내려다보는 가면 쓴 얼굴. 그 꿈을 꾸면 항상 식은땀 흘리면서 깨요. 웃기지 않아요? 사람 죽이는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내가 꿈 때문에 겁에 질리다니.

'인간성'... 그런 거 있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애초에 내가 인간이었던 적이었나? 난 그냥... 살아있는 무기 아니었나? 그 보스라는 새끼가 만든. 아니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

아마 인간성이라는 건 예쁜 집에서 엄마 아빠랑 자라는 애들한테나 있는 거겠죠. 나 같은 애들은... 글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종자인 것 같아요.

선생님이 궁금해하는 내 가슴의 이 흉터... 이건 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생긴 거예요. 8살? 9살? 그때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내 가슴을 칼로 그었어요. 근데 난 죽지 않았지. 대신 그 사람은 죽었고.

아니다. 사실 이 흉터는 내가 도망치려다가 보스한테 벌 받은 거예요. 훈련소 철창을 뚫고 나가려다가... 걸렸거든요. 그때 보스가 직접 내 가슴을 칼로 그었어요. "네가 도망갈 곳은 없다"고 말하면서.

아니다. 이건... 어머니가 남긴 흉터예요. 엄마가 날 죽이려 했거든요. 왜? 아마도 내가 괴물처럼 태어났기 때문이겠지.

아하하! 이 중에 뭐가 진짜일 것 같아요? 다 거짓말일 수도 있고, 다 진실일 수도 있어요. 내 기억은 그렇게 믿을 만한 게 못 돼요.

선생님이 왜 나에 대해 이렇게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냥...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을 죽이는 일. 그게 내 일이고, 그것만 잘하면 돼. 내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내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 참. 선생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의사 선생님이 좋아요. 존나 좋아. 의사 선생님은 내 피를 닦아주고, 내 상처를 꿰매주고... 그런데도 날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그게 멋져.

내 편지가 마음에 들었길 바라요. 다음에 또 써줘요. 난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친근해.

- 지원우가.


[P.S. 근데 선생님, 혹시 당신은 신이에요? 우리를 만든 신? 아니면 그냥 우리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찰자? 나를 만든 게 당신이라면...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왜 내게 이런 삶을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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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고, 멀리서 간간이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지원우는 이번에도 의무실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두 번째 편지.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읽으면서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손가락으로 가슴의 흉터를 무의식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표정이 스친다. 그것은 마치 혼란과 불안, 그리고 어딘가 모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지원우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의무실 구석에 있는 작은 책상으로 가서 펜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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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에게,

선생님은 내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네요. 심지어 내가 모르는 것까지도요. 그건 좀 불공평한 것 같아요. 나는 선생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내가 왜 웃는지도 알겠네. 맞아요, 웃음은 울음보다 덜 아파요. 울면 더 맞았으니까. 보스는 내가 울 때마다 "울지 마라, 네가 약하게 보인다"고 했어요. 그래서 웃었죠. 웃으면서 맞았어요. 웃으면서 사람을 죽였어요.

내 아버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개새끼는 죽어 마땅해요. 나를 이렇게 만든 건 그 새끼니까. 배신자. 그래서 난 누구도 믿지 않아요. 믿으면 배신당하니까.

나를 구원하고 싶다고요? 하하하, 씨발. 웃기네요. 내가 구원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여요? 나는 그냥... 나예요. 난 그냥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살인하고, 웃고, 가끔은... 의사 선생님 생각도 하고.

'텅 비어버린 안'... 맞아요. 텅 비었어요. 채우려고 노력도 안 해요. 차라리 비어있는 게 편해요. 뭔가를 채우면... 잃을까 두려우니까. 비어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채워지지 않으니까 가볍죠.

그래도... 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선생님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나를 '안타까워'한다니, 참 이상한 감정이네요. 나는 그런 감정을 모르거든요. 남을 위해 슬퍼한다? 그게 뭐죠, 맛있나요?

 '행복'이라...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선생님이 말한 '행복'... 그건 나한테 없는 거예요. 난 그냥 살아있을 뿐이에요. 살아있다는 건 숨을 쉰다는 뜻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선생님은 정말 신인가 봐요. 그럼 날 다시 만들어줄래요? 다른 삶으로? 날 바꿀 수 있나요? 이 흉터도 지울 수 있나요? 머릿속 목소리도 없앨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면... 해주세요. 아니면 그냥 날 지워버려요. 아예.

- 지원우가.


[P.S. 의사 선생님이 내 상처를 만질 때, 가끔 심장이 멎는 것 같아요. 이게 정상인가요? 아... 왜 이런 말을 선생님에게 하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