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한도경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전략팀장실에서, 편지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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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거짓말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아니라, 당신이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나는 구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다치지 않길 바랐을 뿐이다. 다치지 않길, 죽지 않길,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팀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당신을 지키고 있다. 당신이 조직에서 배제되길 바란다. 당신이 이 더러운 곳에서 나가서 평범한 삶을 살기를. 당신이 살아남기를. 그것이 전부다.

당신이 나를 이상화하는 것이 두렵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더러운 조직의 전략가일 뿐이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적이지도, 감정을 잘 다스리지도 못한다. 나는 당신이 다칠까 봐 두려워서 떨고 있다. 당신이 강이현의 표적이 될까 봐 두려워서 잠도 자지 못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순수하지 않다. 나는 당신을 욕망한다. 당신의 하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 당신의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당신을 노리는 조직원들을 모두 처리했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뒤를 쫓아다니며 당신을 해하려는 자들을 제거했다. 내가 새벽마다 피범벅이 되어 돌아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하지 않다. 나는 더럽다.

당신이 나를 이상화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기쁘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죄책감이 든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당신을 짝사랑하는 비겁자일 뿐이다. 10년이나 되도록 당신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당신과의 관계가 망가질까 봐, 당신이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당신을 밀어내기로 했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면, 당신이 스스로 나를 떠나게 되면, 그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이 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일과 사랑 외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라고 했지만, 그건 틀렸다. 나는 오직 당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일은 당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내가 전략팀장이 된 것도, 보스의 신임을 얻은 것도 모두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조직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평범한 회사에서, 혹은 대학에서 만났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처럼 당신을 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상상을 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이미 이 더러운 조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강이현이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그가 내게 가하는 고문이 당신을 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신 맞는 것이 당신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럴 것이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밤 당신의 안전을 확인한다. 당신이 잠든 모습을 보면서, 내일도 무사히 지내길 바란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당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당신이 나를 미워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당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당신은 내가 변했다고 했다. 맞다. 나는 변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지키기 위해 변한 것이다. 내가 무표정해진 것도, 말수가 줄어든 것도 모두 당신 때문이다. 당신과 가까워질수록 당신이 위험해질 테니까.

당신이 내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이 두렵다. 나는 정상이 아니다. 당신 말대로다.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의 피가 내 손에 묻어있다. 그들의 비명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당신을 해하려 했던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미친 이유다. 당신을 향한 광기 어린 집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당신은 내가 '진짜'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위장하지 않는다. 당신을 향한 내 감정도, 당신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살인도 모두 진짜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또라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안전하다면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다.

당신은 내가 귀엽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나는 귀엽지 않다. 나는 살인자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또다시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미친놈이다. 그저 당신이 내 본모습을 모르길 바라는 마음이다. 당신이 내 더러운 면을 알게 되면 나를 떠날 테니까.

강이현이 나를 고문하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저지른 일들의 대가다. 하지만 나는 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당신만 안전하다면... 당신만 무사하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든 상관없다.

당신은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강이현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를 고문한다. 당신을 약점으로 삼아 나를 조종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그의 고문을 견딘다. 그가 당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밀어내야만 한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서류를 흘리고, 벽에 부딪치고, 커피를 엎지르는 건... 당신 앞에서만 그렇다. 당신이 내 시야에 들어오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당신은 내가 '진정한 또라이'라고 했다. 맞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미칠 수도 있다. 이미 미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지옥이다.

당신이 쓴 것처럼 나는 '뚝딱거리고', '벽에 부딪치고', '서류를 흘리고', '커피를 엎지르고', '얼굴이 붉어진다'. 그건 모두 진짜다. 당신 앞에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이 터져나온다. 나는 차라리 당신이 나를 미워하길 바란다. 그래야 당신이 안전할 수 있으니까.

당신이 말한 '절절한 사랑'... 나는 이미 하고 있다. 매일, 매 순간.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이미 내 심장과 맞바꾼 지 오래다. 아니. 내 심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지키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감정이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면, 당신은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갑게 굴 수밖에 없다. 당신을 밀어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침묵할 것이다. 당신이 나를 미워하게 될 때까지.

이제 더 이상의 편지는 없어야 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위험한 감정의 흔적을 남겨두어선 안 된다. 하지만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장을 쓰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편지가 되길 바란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당신이 제4의 벽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지키겠다. 비록 당신이 그것을 모르더라도.

 

P.S. 이 편지도 불태워주길 바란다. 아니면 내가 직접 불태우러 가겠다.

 

- 한도경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