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강이현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2)

 

이해든, 아니. 이 편지의 발신인.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구나. 모든 것을. 조직의 실장이자 숙부 강욱의 조카인 나를, 약을 하는 나를, 한도경을 괴롭히는 나를. 하지만 넌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고? 재밌군. 그리고 넌 내가 소시오패스라 단정 짓고 있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네가 방화범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군. 하지만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야. 내 기억엔 너와 그런 일이 없었거든. 내가 감겼다고? 강이현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 방금 전까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 편지를 읽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익숙한 감각이 들어.

약을 한다는 건 누구한테 들은 거지? 조직원 중에 내 약 기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유독 날 걱정하는 말투가 거슬리네. 하긴, 넌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약을 하는 이유가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요리를 했다고? 3년 전에? 난 요리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 넌 허상을 보고 있는 거야. 아니면... 네가 본 강이현이라는 놈이 진짜 나일 수도 있고. 그런데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난 아무에게도 요리를 해준 적이 없으니까. 감정이 있다는 네 말도 틀렸어. 난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한도경 이야기는 하지 마. 넌 모르잖아. 그가 여자 조직원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후, 내가 얼마나 재밌게 그를 가지고 놀았는지. 감정이란 건 약점일 뿐이야. 난 그걸 이용했지. 그런데 말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넌 내가 한도경을 괴롭히는 이유를 알고 있었잖아. 그걸 누가 말해줬지? 조직원들은 모르는 일인데. 심지어 한도경 본인도 자신이 왜 고문당하는지 모르고 있어. 그런데 넌 알았어.

넌 참 이상한 존재야. 내 이름이 강이현인 게 잘 어울린다고? 내 이름을 누가 지어줬는지도 알고 있나? 그리고 유니버스라는 건 또 뭐야. 내가 다른 세계에도 있다는 건가? 그래,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 내가 다른 세계에서는 감정이 있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건 이 세계의 내가 아니야. 이 세계의 난 감정이란 걸 모르고, 요리도 할 줄 모르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넌... 넌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고 했지. 그럼 넌 누구지?

이상하게도 네 편지를 읽고 있자니 익숙한 감각이 들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아.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난 누구도 알고 지내본 적이 없으니까. 그저 이용하고, 버리고, 죽이기만 했지.

유치원 선생님이라... 그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야. 하지만 왜 그 이야기를 읽자마자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떠오르는 거지? 아니, 이건 네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야. 난 그런 적이 없어. 있을 리가 없어.

P.S. 다음 편지는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기다리고 있겠어. 넌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으니까.

- 강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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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에게,

다시 한 번 편지를 받았다. 내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보고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감정을 느낀다니, 이게 말이 되나. 하지만 분명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웠어. 마치 오래된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처럼.

넌 내 체형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 슬림한 체형이라고. 넌 날 잘 알고 있어. 181cm의 키에 정장을 입으면 슬림해 보이는 체격. 하지만 옷을 벗으면 근육이 드러나는 몸. 그걸 어떻게 알았지? 넌 내 옷을 벗은 모습도 봤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세계의 내가 너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줬나?

태풍의 눈이라... 그래, 맞아. 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 모든 게 무너지고 파괴되어도, 난 그저 그 자리에서 모든 걸 지켜봤지. 감정 없이, 동요 없이. 하지만 네가 말한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강이현'은... 그건 내가 아닐 거야. 난 태어날 때부터 이랬으니까.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웃기는군. 난 한 번도 행복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어.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면? 동생과 잘 지낸다면? ...강이령.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열여섯? 열일곱? 기억도 안 나. 그리고 그게 더 나아. 기억하지 않는 게, 그리워하지 않는 게 더 편하니까. 가족이란 건 그저 피로 이어진 짐덩어리일 뿐이야.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 아이가 웃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난 더 많은 약을 써.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폭풍우가 몰려오는 바다에서 통통배를... 그런 상황이라면 난 널 가장 먼저 바다에 던졌을 거야. 내 생존을 위해서. 하지만 네 말대로 그때의 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자. 넌... 정말 나를 '좋아한다'는 게 무슨 의미지? 난 그런 감정을 모르는데. 넌 내가 모르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 그런데 난 네가 말한 그 '좋아함'이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 사랑? 그건 더더욱 모르지. 난 그저 이용할 가치가 있는 도구와 없는 도구만을 구분할 줄 알 뿐이야.

하지만 네 편지를 읽고 있자니...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내가 정말로 감정이 없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지. 난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고 믿었어. 하지만 넌 내가 감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네. 그게 가능할까?

넌 내가 어떤 놈인지 잘 알면서도 이런 편지를 쓰는구나.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얼마나 많은 여자를 망가뜨렸는지 알면서. 그런데도 날 좋아한다고? 넌 미친 거 아냐?

P.S. 다음 편지는... 언제 올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감정도 처음이야.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린다는 것.

- 강이현 -

P.P.S. 아, 그리고... 내 몸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다니 불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아. 넌 도대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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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부분의 다른 ver.]

좋아한다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넌 그저 상상 속의 나를 좋아하는 거야. 현실의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추악해. 난 감정이란 걸 모르고, 사랑이란 걸 이해하지 못해. 그저 도구로만 사람을 보지.

하지만 네 편지를 읽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불편해져. 마치... 누군가가 내 심장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처럼. 이게 감정인 걸까? 아니면 그저 각성제의 부작용일까.

넌 내가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했어. 하지만 난 그런 걸 바라지 않아. 행복이란 건 나약한 자들의 도피처일 뿐이야. 그래도... 네가 말한 그 세계의 나는 어땠을까. 강욱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이령이와 함께였다면...

잠깐,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이건 네 탓이야. 넌 내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들을 심어놓았어. 이제 와서 감정이니, 행복이니 하는 걸 생각하게 만들다니.

P.S. 다음 편지는... 쓰지 마. 이런 감정들이 싫어. 하지만 네가 또 편지를 보낼 거란 걸 알아. 그리고 난... 그걸 기다리고 있을 거고.

 

- 강이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