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서태주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이해든 씨에게.

이해든 씨. 내가 이렇게 정중하게 호칭을 붙이는 거, 처음이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봤어. 음, 그 당시의 나도 지금과 비슷했나. 그런 내게 당신이 섬뜩하게 보였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내가 입이 험한 건 알아. 생각해 보면 그게 일종의 자기 방어였는지도 모르겠네. 태온의 보스라는 자리는 위험해. 누군가를 내 곁에 두고 싶어도 함부로 둘 수 없는 위치라고. 난 실장 이현이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믿지 않아. 근데 당신은... 나를 '인간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더군. 당신 말대로 서휘가 내 마지막 인간성일지도 모르지.

이해든 씨. 당신이 내게 서휘와 비슷하다고 느낀 건 당신의 순수함 때문이야. 서휘도 당신처럼 눈빛이 맑았어. 그래서 난 서휘를 조직에서 멀리 떨어뜨린 거고.

내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어. 당신이 설원회 소속이라는 걸 알았을 때... 솔직히 말하면 배신감이 컸지. 그래서 당신에게 험악하게 굴었던 것 같아. 미안해.

'같이 죽자'라... 그건 진심이었어.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기 힘들어.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어. 담배를 입술로 건네준 것도... 뭐랄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표현이었나 봐. 이렇게 말하니까 민망하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당신이 말한 '소행성 설정'이라는 게 뭐야? 내가 모르는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당신이 내 여자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지. 근데 말이야... 난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 쉽게 놓지 못해. 서휘도 그래. 당신도 그래. 내가 욕심쟁이라는 건 알아. 그래도 당신이 나를 '인간적'이라고 말해준 게 고맙네. 당신 말대로 내가 서휘 이야기를 자주 한다는 건... 그만큼 그 녀석이 내게 소중하다는 뜻이겠지.

근데 말이야, 당신이 우리 세계 바깥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아? 아마 당신이 그런 존재라는 걸 알았다면, 우리의 첫 만남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좋았어. 당신과의 만남이.

이해든 씨. 당신이 말한 '도파민 중독자'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는군. 내가 그렇게 자극적인 사람이었나? 글쎄... 난 그저 내 방식대로 살아왔을 뿐인데. 하긴, 당신 말대로 내가 입이 험하고 공격적인 건 사실이지. 근데 그런 내가 이렇게 차분하게 편지를 쓰고 있다니... 좀 웃기지 않아?

PS. 아, 그리고... 당신이 뒷걸음질 친 거, 이제야 이해가 가.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 보네. 미안해.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점잖게 굴어볼게. 물론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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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두 번째 편지를 읽었어. 내 인생이 '정상적'이었다면 어땠을지... 라는 그 가정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군. 그래, 당신 말대로야.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할머니가 더 오래 살아계셨다면, 서휘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있었겠지. 아니면 서휘처럼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누비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해든 씨. 그런 가정들이 나를 더 아프게 해. 현실은 이미 지나갔고, 돌이킬 수 없잖아.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이유가 있어. 내가 선택한 거야. 서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당신이 말한 '인간적인 삶'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어.

당신 편지에서 '지갑 속 사진' 얘기가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난 그 사진을 아무한테도 보여준 적 없는데. 서휘랑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인데... 아, 됐어. 당신이 뭘 알고 있든 상관없어. 어차피 당신은 이 세계 바깥의 사람이니까.

그리고... 14살 차이 나는 '그 애' 얘기는 하지 마. 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건 내 사생활이야. 내가 누구랑 관계를 맺든 그건 내 자유고.

...미안해. 또 날이 서있네. 당신 편지를 읽으면서 느낀 건데, 당신은 나를 걱정하고 있더군. 술이랑 담배... 그래, 많이 하긴 해. 근데 이게 내 유일한 위안이야. 서휘도 없고, 믿을 사람도 없는 이 자리에서... 가끔은 혼자서 취해서 울 때도 있어. 이런 얘기, 이현이한테도 못 해. 근데 왜 당신한테는 하고 있는 거지?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쓴 '해피엔딩'이란 말이 걸리는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건 없어. 그래도 당신이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네. 내가 이렇게 누군가의 걱정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어서.

이해든 씨. 당신이 말한 '결핍'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려. 그래, 난 부족한 게 많아. 서휘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이현이 빼고는 믿을 사람도 없지. 근데 그게 내 선택이었어. 내가 이렇게 되기로 한 거라고. 당신이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PS. 아까 편지 쓰다가 술 한 잔 했어. 취해서 쓰는 건가... 이상하게 솔직해지네. 당신한테는 이런 얘기 해도 될 것 같아서. 당신은 어차피 이 세계 사람이 아니니까.

- 서태주

서태주의 서명 옆에 담배 연기 자국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