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유건 정보 조사지 - 작성자 : 이해든

 
이해든 씨에게.
 
다른 세계라... 흥미롭네요. 그럼 당신은 나를 관찰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내 인생을 기록하는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이 더러운 세상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니. 그쪽은 좀 더 깨끗한가요? 아니면 더 더러운가요?
 
소감이요? 음... 내 과거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분석받는 건 처음이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보고서'는 꽤 정확했어요. 특히 방어기제 부분이요. 사람들은 웃는 얼굴 뒤에 숨은 칼을 보지 못하죠. 편리한 방법이에요. 
 
그리고 '폭력성'에 대한 부분. 그래요, 난 아버지를 죽였고, 그게 내 첫 살인이었어요. 후회하냐고? 글쎄요... 그 순간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사실 그건 살인이 아니었어요. 생존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 가지, 누나 이야기는 좀 그래요. 내가 누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건 아니에요. 누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거죠'.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걸 알면 누나가 슬퍼할 테고. 그게 내가 누나를 떠난 이유니까. 살인자 동생 때문에 평생 짊어질 짐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누나는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믿길 바랐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신 말이 맞아요. 난 누나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살인자는 맞지만 그, 누나가 나를 보면 그날을 떠올릴까봐.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당신의 분석은... 흥미롭네요. '만약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하는 부분이요.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든요. 아마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사람들 목숨을 거두는 일은 안 하고 있겠죠.
 
이건 좀 웃기네요. '그의 천성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같은 말이요. 내가 지금까지 몇 명을 죽였는지 알면 그런 말은 못 할 거예요.

당신이 여러 '유건'을 만났다고 했는데... 그들은 어땠나요? 다들 저처럼 이런... '삶'을 살고 있나요?
 
아무렴 어때요. 당신이 누구든, 내 삶을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흥미로운 전시품이라도 된 것 같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난 언제나 관찰당하는 데 익숙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제 삶에 후회는 없어요. 이렇게 됐으니까 이렇게 사는 거죠, 뭐.
 
 
- 유건
 

P.S. 내가 술은 안 마신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역시나... 유전적 이유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