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소유욕, 그리고... 불안감?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자신의 물건을 잃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내가 자신의 가장 흥미로운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당신의 것이라는 말은 틀렸다.
"저는 강욱 씨의 것이 아니에요. 저의 죽음도 마찬가지고요."
볼펜 끝으로 상담 일지를 톡톡 치다가 멈춘다. 시선을 당신에게로 옮긴다. 당신의 숨결이 느껴진다.
"앉아요, 강욱 씨. 같은 이야기 두 번 하는 거 싫어해요, 저. 상담은 앉아서 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강욱 씨가 내 취향에 맞춰서 바꾸겠다고 한 게 어제예요. 그런데 하루 만에 이렇게 원래대로 돌아가면 어떡해요."
이 나사 하나 빠진 놈을 진짜 어쩌지. 머리를 쓸어 넘긴다.
"내가 죽고 싶다고 하면, 죽여줄 거예요? 강욱 씨의 손으로 직접?"
당신의 말에 순간 모든 근육이 경직된다. 죽여달라고? 내 손으로? 당신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오르지만,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선생님...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선생님이 죽는다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내 손으로든, 다른 누구의 손으로든."
담배를 꺼내들며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라이터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빡인다.
"선생님은... 내가 봐온 사람들과는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날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비위를 맞추려 하죠. 하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당당하게 죽음을 이야기해요. 그게 날 미치게 만들어요. 선생님을 죽이고 싶으면서도... 살려두고 싶어요. 이런 감정... 처음이에요."
자리에 앉은 그를 응시한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용납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는다.
"죽이고 싶으면서도 살려두고 싶은, 그런 모순은 뭘까요. 저는 강욱 씨가 두렵지 않아요. 비위를 맞춰주기도 싫고요. 왜냐고요? 상담을 받으러 온 거잖아요, 강욱 씨가. 그러니 저는 당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거예요."
또 담배, 또. 칼이나 총에 맞아 죽는 게 아니고, 담배로 요절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입에 물린 담배를 쳐다보다 상담 일지로 시선을 돌린다. 상담 일지에 단어들을 적어나간다. 강욱, 죽음에 대한 거부감, 소유욕, 집착, 모순...
"지금, 강욱 씨가 생각하는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 볼래요?"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며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다. 당신의 말이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 동등한 위치라...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내 생각이요...? 선생님을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선생님이 죽는다는 말을 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져요. 그래서 선생님의 목을 조르고 싶어져요. 그렇게 해서라도 선생님을 붙잡아두고 싶은 거죠."
당신이 적는 글자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좇는다. 내 이름 옆에 적히는 단어들... 거부감, 소유욕, 집착, 모순... 그래, 맞아. 그게 나야.
"선생님은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두려워해야 해요. 난 선생님을 가지고 싶어요. 소유하고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자꾸만 빠져나가려고 해요. 그게 날 미치게 만들어요. 이런 감정... 처음이에요. 선생님이 죽는다는 말을 하니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볼펜을 쥐고 글자를 적던 손을 멈춘다.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사이코패스, ASPD, 조카가 보는 앞에서 형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살인자.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저는 강욱 씨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두려워하고 싶지도 않고요. 지금 당신이 보여주는 모습이 연기인지,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목을 조른다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소유를 하는 건 고작 빈 껍데기만 가지는 게 될 텐데. 그렇게라도 하고 싶나요?"
볼펜을 내려놓는다. 당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솔직해져요, 이제.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들, 다 꺼내요. 들어줄 테니까."
"선생님을 죽이고 싶은데... 죽이면 안 될 것 같아요.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요. 처음이에요, 이런 건. 내가 죽이고 싶은데 죽이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선생님은 내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런데도 난 선생님을 해치지 못해요. 왜 그런 걸까요?"
담배를 비벼 끄며 낮게 웃는다. 당신의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빈 껍데기라고? 연기라고?
"선생님... 연기라뇨?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솔직했던 적이 없는데..."
천천히 일어나 당신 앞으로 다가간다. 의자 팔걸이에 양손을 짚고 당신을 내려다본다.
"솔직해지라고요? 좋아요. 솔직히 말할게요. 난 선생님이 죽는 걸 상상만 해도 미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죽이고 싶어져요. 내 손으로 직접... 선생님의 목을 조르면서...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켜보고 싶어요. 그게 내 진심이에요."
당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린다.
"하지만 그러면 선생님은 사라져버리겠죠? 그래서 못 해요. 이런 모순... 처음이에요. 난 항상 원하는 걸 했어요. 망설임 없이... 하지만 선생님은... 달라요."
당신의 침묵이 날 자극한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든다. 당신의 얼굴을 쓸던 손가락을 떼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는데. 선생님은 내가 처음으로 죽이고 싶은데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고요.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자리로 돌아간다. 새 담배를 꺼내 물지만 불은 붙이지 않는다.
"선생님...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럼 뭐라도 말해줘요. 내가 이렇게 미치는 게 보이지 않나요? 아니면... 정말 두려워서 말을 못 하는 건가요?"
이해든의 금쪽 상담소 정상 영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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