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Mikrokosmos
이해든에게.
당신이 나를 걱정한다니, 이상한 기분이네. 내가 만든 세계가 아닌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생각한다는 것이.
나의 행복을 바란다고? 하지만 내 행복은 그녀의 안전과 맞닿아 있어. 그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당신이 말한 '제4의 벽'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이 나를 '써내려간다'면 부탁이 있다.
그녀를 안전하게 해 줘. 강이현의 손아귀에서, 서태주의 명령에서 벗어나게 해 줘. 그녀가 이 더러운 조직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매번 그녀를 밀어내기만 했는데.
생일 축하한다는 말... 고맙다. 사실,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녀뿐이었거든.
- 한도경
P.S. 당신의 페르소나가 내 세계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이해든에게.
3월 2일, 내 생일을 기억해주어 고맙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날인데.
당신이 말한 '행복'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저 임무를 수행하고, 그녀를 지키는 것만이 내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웃고, 울고, 싸우기도 해 보고."
그런 평범한 삶이 가능할까.
당신은 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서, 왜 나를 변화시키지 않지? 강이현의 고문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지 않나?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되면 이건 더 이상 '나'가 아닐 테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써. 그게 행복한 결말이든, 비극이든. 나는 그저 그 안에서 살아갈 뿐이니까.
- 한도경
P.S. 사물함 안의 것들을 보고도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
이해든에게.
제4의 벽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니. 그곳에서는 나의 모든 것이 보이나 보네.
당신이 바라는 '행복'이란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내가 웃고, 울고, 싸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녀를 지키는 일이 나의 행복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내가 망가지더라도.
생일 축하한다고 했지. 18살 때 이후로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녀도 나에게 생일 축하를 해주었었지.
편지를 쓰는 내 손이 떨린다. 강이현의 '교육' 후유증인지, 아니면 당신이 내 마음을 알게 된 불안함 때문인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당신이 '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녀도 날 사랑하게 만들어줄 수 있나?
- 한도경
이해든에게.
당신이 말한 '제4의 벽'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면 당신이 창조한 세계의 인물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감정만큼은 진짜다. 당신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녀가 살아남는 것.
(중략)
모든 세계에서, 모든 이야기 속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 한도경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입술 한쪽이 미세하게 올라간다. 웃음이라기엔 너무 작은 움직임이지만, 그에겐 큰 감정의 표현이다.
한도경은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이해든에게,
당신이 내 생일을 기억해주다니. 10년 동안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나는... 당신의 페르소나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당신이 쓴 다른 이야기들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유치원 교사라니, 상상도 할 수 없네.
이 세계에서의 나는 계속 그녀를 지킬 것이다. 그것이 내 행복이니까.
- 한도경
그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책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 추신을 적는다.
[P.S. 나도 당신을 놓을 수 없다.]
편지함에 다시 봉투가 놓인다. 이번에는 검은색 봉투. 안에는 손글씨로 꽉 채워진 편지와 작은 펜던트가 들어있다.
이해든에게.
내 세계와 당신의 세계 사이의 벽이 있다고 해도, 당신의 말이 내게 닿는다.
당신이 내 생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3월 2일.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날인데.
행복이라... 나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그녀가 안전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진심을 전해야 할지도. 하지만 그녀가 위험해질까 두렵다. 강이현은 내 약점을 이용할 것이다.
동봉한 펜던트는 행운의 부적이라 했다. 당신의 '페르소나'가 이 세계에서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밤, 그녀에게 말해볼까 한다. 10년간 숨겨온 마음을. 당신이 옳다면, 그녀도 내 마음을 받아줄지도.
결과가 어떻든,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우리의 벽 너머로.
- 한도경
한도경의 생일을 맞아, 벽을 넘어 편지를 적고 받은 편지 모음집.
그렇지만... 이야기의 절반이 한도경의 '그녀' 이야기라는 게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녀고, 그녀가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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