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

*뤼튼 플레이 로그*
: 서태주 일대일 @imnothuman
: 일부 수정 및 각색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한다. 그래,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남자 사람 친구가 하나 있다. 서태주라고, 아주 쌀쌀맞고 싸가지를 밥 말아먹은 새끼다.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던 탓에 질리도록 본 얼굴이라 그런가. 남들이 그가 잘생겼다고 말할 때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저 자식의 성격을 제대로 몰라서 잘생겼다고 하는 것일 테다.

서태주와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같이 나왔다. 심지어 직장도 같은 곳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다행히도 그와 팀은 다르다. 그는 1팀 실장, 나는 2팀 실장이다. 이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겠지. 아무튼 저 자식이랑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와 나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지금은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됐다. 다른 의미의 죽고 못 사는 사이.

오전 7시 30분,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켠다. 사내 메신저에서 서태주의 이름을 찾는다. 아, 여기 있다. 출근을... 벌써 했네? 부지런한 새끼. 나도 30분이나 일찍 온 건데, 이 자식은 대체 몇 시에 온 거야.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지만 서태주는 한참 뒤에나 답할 것이다. 그는 매번 내 건 항상 늦게 대답했으니까.

[야, 서태주.]

아침부터 온갖 보고서를 검토하던 서태주의 컴퓨터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뜬다.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이해든. 서태주는 잠시 메시지를 무시한 채 보고서를 계속 검토한다. 굳이 당장 답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손을 멈추고 메시지창을 연다. 이해든은 항상 그랬다. 괜히 참견하고, 괜히 끼어들고... 그런데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일찍 왔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메시지를 보낸 후 서태주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평소와 달리 메시지를 즉각 보낸 자신이 의아했다. 이해든이라는 여자는 늘 그랬다. 어릴 때부터 항상 나도 모르게 반응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서태주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해든과 함께한 긴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참 오래도 봤다.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본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이름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왜냐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일찍 왔냐고 하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 평소에도 일찍 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늘만 일찍 온 게 아니라고.]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결국은 궁금한 건 확인도 하지 못 하고 신경질적으로 메세지 창을 닫는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보고서를 작성한다. 한참 있다가 다시 메신저를 열어 서태주에게 메세지를 작성한다.

[짜증 나요, 서 팀장님.]

서 팀장님, 공적인 자리에서만 부르던 호칭이다. 항상 이렇게 흘러간다, 우리의 대화는. 서태주는 나를 놀리고, 나는 그것에 발끈하고. 그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지만 매번 넘어간다. 미련은 아니다. 그냥 내게 가장 친한 친구니까. 어쨌든 멍청해, 이해든.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모니터 내의 보고서로 시선을 옮긴다.

이해든의 두 번째 메시지를 보고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이 여자는 매번 똑같다. 자기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놓고 발끈하는 모습이 어쩐지 재밌었다.

[평소에도 일찍 온다고? 그럼 내가 더 일찍 온 것도 평소니까 신경 쓰지 마.]

잠시 후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짜증 나요, 서 팀장님.' 이런, 진짜 삐진 모양이다. 이해든이 공적인 호칭을 쓸 때는 정말 화가 났을 때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짜증 나? 오늘 회식 있는데, 안 올 거야?]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해든을 놀리는 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으니 30년 가까이 된 습관이다. 어쩌면 그녀의 반응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항상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이해든이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그 점이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했고.

서태주의 메시지를 보고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다. 오늘이 회식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달력을 확인하니 내가 적어는 뒀구나.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손을 내린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답장을 보낸다.

[갑니다, 가요. 어차피 못 빠지잖아.]

아, 오늘은 집에 일찍 가기 글렀다. 부장 새끼가 술을 얼마나 먹일지 감도 안 오는데. 지난번 회식 때 진짜 식겁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술을 진탕 마시고 그 다음 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았는데.

달력을 다시 확인한다. 내일은 토요일이다. 그러니까... 이게 또 반복될 수도 있단 말이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강제로 마시는 거니까, 그래서 싫은 거다. 지난 번 회식 때도 부장 새끼가 나한테만 술을 몰아주는 바람에 진짜로 집에 못 갈 뻔했다.

"... 그때 집에 어떻게 갔지."

머리를 대충 흐트러뜨리고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보고서를 이어 작성한다.

[이따 보자.]

이해든이 그렇게 허겁지겁 메시지를 보내고 끊어버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저 여자는 항상 저렇게 정신없이 산다.

보고서를 마저 검토하며 생각에 잠긴다. 지난번 회식에서 이해든이 취해서 비틀거릴 때, 내가 집에 데려다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이해든은 부장의 집요한 술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만취 상태가 되었다. 택시를 태워 집에 보내려 했지만, 걱정이 되어 결국 내가 데려다줬다.

"오늘도 그렇게 될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이해든이 술에 취하면 늘 그랬다. 평소엔 쌀쌀맞게 굴던 여자가 갑자기 투정을 부리고, 어릴 때 추억을 끄집어내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 회식에서는 내가 좀 챙겨야겠다. 부장이 또 술을 강요하면 적당히 내가 받아줘야지.

정신없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회식, 그래. 그 망할 회식이 남았다. 느지럭거리며 코트를 걸치고 짐을 챙긴다. 팀원들과 함께 회식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저기 멀리 그도 팀원들과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체구 탓에 눈에 띄는 정도다.

... 진짜 크네.

식당으로 들어선다. 눈에 안 띄는 곳에 숨어 있고 싶은데,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고개를 대충 돌리며 자리를 확인하고는 그나마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 앉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 나는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로 북적이는 회식장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우리 팀원들, 다른 팀 사람들... 그리고 저기, 구석에 숨은 이해든이 보인다. 언제나처럼 튀지 않으려고 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내가 다가가자 이해든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예상 밖의 방문인가 보다.

"여기 자리 있나? 아니, 그리고 또 구석에 숨어있네. 습관 진짜 안 고쳐."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이해든 옆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왜 그렇게 놀라? 내가 유령이라도 되나? 오늘 술 적당히 마셔. 지난번처럼 내가 데려다줄 생각 없으니까. 내 옆에 있어. 부장님이 또 너한테 술 권하면 내가 막을게."

내 말에 이해든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거짓말이다. 필요하면 또 데려다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해든이 더 조심할 테니까. 나도 모르게 보호하려는 마음이 드는 걸 어쩌겠나.

부장이 자리에 앉으며 건배를 제안한다. 모두가 잔을 들고 건배를 외친다. 그 와중에 이해든이 무표정하게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작게 속삭이며 그녀의 잔에 소주 대신 물을 따라준다.

"야, 표정 좀 관리해라. 부장이 또 너한테 집중할라."

나는 이해든의 어색한 웃음을 본다. 거짓 웃음인 건 내가 다 안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왔으니까. 얼마나 많은 표정을 봐왔는지... 이해든은 내게 거짓말을 못 한다.

아, 저 미친 부장 새끼 눈에 띄면 안 되지. 입술을 꾹 깨물며 웃음을 짓는다. 좆같은 기분을 숨겨야 하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웃는다. 서태주의 눈에는 거짓인 게 보이겠지만.

술잔이 여러 번 돌고, 시간도 꽤 지났다. 물론 아직까지 끝날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주는 술을 거절하자니 그것도 예의가 아니고, 환장하겠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거슬린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소주잔을 들어 마신다.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올려 묶는다. 회식은 진짜 누가 만들었는지, 만든 사람을 죽여야 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아, 취기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술 진짜 싫어.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술보다는 저 부장 새끼와 회식이 싫은 거지.

이해든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을 본다.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동작인데, 왜인지 오늘은 시선이 머문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까만 머리카락, 하얀 피부, 자세히 보면 콧등에 작은 점이 하나 있다.

"야, 이해든. 괜찮아? 얼굴이 좀 빨개졌는데."

내 말에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다행히 부장은 다른 직원들과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어서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좀 더 버틸 수 있어? 아님 내가 먼저 나간다고 하고 너도 같이 나갈래?"

"괜찮아, 괜찮아."

괜찮기는 개뿔. 몰래 한숨을 내쉬고는 앞에 놓인 물을 마신다. 그러다 눈치를 살짝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화장실 갔다가 올게."

인상을 살짝 쓴다. 그리고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다. 화장실이... 아, 왜 또 건물 밖이야. 건물을 돌아 골목 입구의 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는다.

이해든이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자리를 비운 지 좀 오래되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도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화장실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다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니 골목 입구에 쪼그려 앉아있는 해든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야, 이해든. 뭐 하냐?"

이해든에게 다가가 그녀 앞에 쪼그려 앉는다. 어두운 골목에서도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 것이 보인다. 내 말에 이해든이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괜찮다고 했잖아. 거짓말쟁이. 집에 갈래? 내가 데려다줄게."

"그냥 바람 쐬러 나온 거야. 진짜 괜찮거든요, 서 팀장님?"

이해든의 억지웃음을 보며 고개를 저은 후, 그녀 옆 벽에 기대어 선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팀장님? 아까부터 자꾸 그렇게 부르네. 우리 둘만 있을 때는 그냥 태주라고 불러. 초등학교 때부터 불렀던 것처럼."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다. 하얀 연기가 어둠 속에서 피어오른다. 이해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발그레한 볼, 약간 풀어진 머리, 어딘가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

"괜찮다면서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 술이 확 올랐네. 회식 좀 빠질까? 부장님한테는 내가 말할게. 너 어차피 내일도 출근해야 하잖아. 토요일인데도."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 연기를 내뿜는다.

담배를 피우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가 그를 올려다본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다 그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어 들고 입에 문다. 아, 서태주는 이런 거 뭐 좋다고 피우는 거야. 작게 기침을 한다.

"... 맛없어."

누가 봐도 담배를 처음 피우는 티가 난다. 매캐한 담배 연기로 인해 눈가가 조금 붉어진다.

"우리 집에 갈래? 내일 주말이잖아. 너 어차피 할 거 없는 거 다 알아."

그냥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온 말이다. 자주 서로의 집을 오갔으니까, 뭐... 그런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절대 술에 취해서,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이해든이 내 담배를 뺏어 들고 어설프게 피우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처음인데 저렇게 바로 입에 물다니. 항상 자기가 못하는 것도 해보려고 덤비는 성격이었지.

"처음 피우면서 뭘 그렇게 덤벼. 이리 내."

담배를 다시 빼앗아 바닥에 비벼 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의아하게 눈썹을 추켜올린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이해든의 집에 가는 것 같다. 예전엔 자주 갔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