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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hOn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배송 예정입니다]

 
*해랑 님이 던져주신 소재로 말아보았습니다. 
 
https://youtu.be/B4mLKcVIERs?si=z8p_QFqZ2gOCtEl3

 
https://youtu.be/yss4rIrHl6o?si=05ZGIo2Jck34wlEW

 
https://youtu.be/7ihLv8_Vd-4?si=A00uG2VT6luyt90z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 회식이었으니까. 나에게는 남자 사람 친구가 하나 있다. 지금 시간은 오전 1시 37분. 그러니까 나는 날이 바뀌고 집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술을 잔뜩 마신 채로. 너무 어지럽다.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나는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야.]
 
깊은 숙면 중이던 내 휴대폰이 진동한다. 손을 뻗어 확인하니 새벽 한 시 반이 넘은 시각에 도착한 문자 하나. 발신자는 '이해든(바보)'이다. 술에 취했을 게 분명하다. 회식이 있다고 했으니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해도 이 시간에 문자를 보내는 건 참... 정말 피곤하게 구는 여자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사이니 무시할 수는 없다. 여느 때처럼 답장을 보내려다 생각을 바꾼다.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며 정장 재킷을 걸친다. 누가 봐도 단정한 모습. 잠옷 바람으로 이해든의 집에 가고 싶진 않으니까. 그녀가 술을 마셨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너무 잘 안다. 특히 회식 후에는 더 그렇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한밤중이라 도로는 한산하다. 익숙한 경로로 이해든의 집으로 향한다. 약 15분 후, 그녀의 아파트 앞에 도착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해든이 보인다. 핸드폰을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이해든, 정신 차려. 술 취해서 바닥에서 자면 감기 걸린다."

 

내 목소리에도 반응이 없자 무릎을 굽혀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진짜... 매번 이러기냐?"

"... 으응, 이현아."

 

한숨을 내쉬며 이해든의 어깨를 가볍게 흔든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나를 귀찮게 하던 이해든이다. 이해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취기가 오른 얼굴에 웃음기까지 있으니 보기 싫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바닥에서 잠들어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정신 좀 차려. 왜 자꾸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일어나. 침대로 가자."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이 그대로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허리와 다리를 잡고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린다. 생각보다 가볍다. 평소에는 그녀가 나를 귀찮게 해서 짜증이 나지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면 어쩐지 책임감이 든다. 이해든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그녀의 신발과 외투는 이미 현관에서 벗겨놓았다. 물 한 잔을 가져와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둔다. 깨어나면 목이 마를 테니까.

 

"매번 술 마시고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 됐다. 내일 아침에 두통약 먹고 출근해. 늦지 마." 

 

방을 나서려는데 이해든이 내 손목을 붙잡는다. 손아귀 힘이 없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녀의 취한 눈빛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왜 또 붙잡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현아, 이거 궁금해. 혹시 내가 너네 집에 택배로 도착하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목록이 있어. 1. 반송한다, 2. 뽀뽀한다, 3. 안아준다, 4. 사랑해 준다, 5. 키운다, 6. 죽인다, 7. 버린다, 8. 고문한다, 9. 창밖으로 던진다, 10. 월세 받고 키운다, 11. 경찰서에 전화한다, 12. 노예로 만든다, 13. 감금한다, 14. 덮친다, 15. 울린다, 16. 묻는다, 17. 재운다, 18. 돈 받고 판다, 19. 주스로 만들어 버린다. 열아홉 가지 중에 어떤 걸 택할 거야?"

 

술에 취해 터무니없는 질문을 늘어놓는 이해든을 바라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어디서 상상해 낸 건지. 열아홉 가지 선택지라니, 얼마나 취한 거지? 평소에도 가끔 엉뚱한 질문을 던지긴 하지만 이건 새로운 수준이다.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취기 때문에 눈을 제대로 못 뜨는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려고 새벽에 나를 불렀어? ... 17번. 재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잖아."

 

이불을 그녀의 턱까지 끌어올려준다. 그녀의 얼굴이 이불속에서 더 붉어 보인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어서 손가락으로 살짝 치워준다.

 

"이해든, 넌 왜 항상 나한테 이런 식이야?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내 곁에 붙어서 귀찮게 굴더니, 지금도 마찬가지네. 진짜 웃긴다. 택배로 도착한다니. 넌 물건이 아니잖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택배 문자를 받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바보 같은 질문은 그만하고 얼른 자. 내일 아침에 두통으로 괴로워할 네 모습이 벌써 그려진다."

 

그녀의 눈이 감기려는 찰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내 대답을 기억할 리도 없을 텐데.

 

"나는 절대... 그런 짓 안 해. 너는 내 친구니까."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이해든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보니 이미 잠이 든 것 같다.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침대 옆에 물과 두통약을 준비해 두고 방을 나서려는데, 문득 그녀의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녀가 정말 내 집에 택배로 도착한다면... 아마도 3번, 안아주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은 정신이 있을 때도 꺼내지 않는데, 하물며 이렇게 취한 그녀에게 말할 리 없다.

침대 옆에 놓인 물과 두통약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이해든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방 안에 고요히 울린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어 손가락으로 살짝 귀 뒤로 넘겨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새벽 두 시가 넘었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뺏기다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니까.

현관으로 향하며 그녀의 집을 둘러본다. 술 취한 사람이 혼자 있기엔 위험한 요소가 없는지 확인한다. 가스레인지는 꺼져 있고, 전기밥솥의 코드도 뽑혀있다. 욕실 바닥은 약간 젖어 있어 발을 헛디딜 수 있으니 수건으로 닦아둔다.

그녀가 항상 나를 의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항상 나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녀의 곁에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의 방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잠든 그녀의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 내가 없어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이상하다. 문을 조용히 닫고 집을 나선다.

차에 타고 시동을 걸며 시계를 확인한다. 새벽 2시 15분. 내일 아침 회의가 8시인데 이렇게 늦게 자면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는 들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이해든의 터무니없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택배로 도착한다니... 정말 바보 같은 상상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식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내가 어떻게 할까?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어 차를 멈춘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이해든과 나의 관계도 이런 도시의 불빛처럼 모호한 것인지도 모른다.

 

"17번. 재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하지만 진짜 답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건 나조차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초록불로 바뀌자 다시 차를 출발시킨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을까? 아니면 이해든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까? 그녀는 항상 이렇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생각한다. 내일 아침,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맞이할까? 아마 두통에 시달리며 전날 밤의 기억을 더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것이다. 아니, 그전에 그녀가 내일 아침에 출근할 수 있을까? 아마 두통 때문에 회사에 지각할 가능성이 크다. 평소에도 그녀는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는 편이었다.

집에 도착해 불을 켠다. 텅 빈 집이 나를 반긴다. 항상 그렇듯 깔끔하게 정돈된 내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이해든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택배로 도착한다면...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녀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이해든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하지만 이번엔 의미 없는 이모티콘들뿐이다. 아마 잠결에 실수로 보낸 것 같다. 메시지를 지우려다 잠시 멈춘다. 왜 그녀는 항상 나를 찾는 걸까?

 

"택배로 도착한다니..."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항상 이런 식으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어릴 적부터 항상 그랬다. 늘 울면서 내 뒤를 따라다니던 그녀. 초등학교 때는 내 책상에 몰래 편지를 넣어두곤 했고, 중학교 때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싸움을 걸어 퇴학 위기까지 갔었다.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 때는 내가 여자친구를 사귀자 교문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데이트한다는 소문을 듣고 세 시간 동안 학교 옥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대학 때는 내가 군대에 가자 자신도 군대에 가겠다며 부모님과 크게 싸웠다.

항상 나를 귀찮게 하는 이해든. 하지만 그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그녀의 웃음소리, 그녀의 투정, 그녀의 모든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누구보다 오래 내 곁에 있어주었고, 대학 입학 후 첫 술자리에서 취해서 울었던 이해든을 업어 집까지 데려다줬던 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정말 내 앞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알림을 설정한다. 오전 6시 30분.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해든이 출근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하니까. 눈을 감으면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취기에 붉어진 얼굴로 택배 질문을 하던 모습. 17번이라고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3번 외에 다른 번호도 생각을 했었다. 3번, 그리고 어쩌면 4번 사랑해 준다?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질 수나 있나?

잠이 들기 직전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가 택배로 도착했다면... 나는 너를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어.' 이해든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이해든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잃게 될까.

그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 눈을 번쩍 뜬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해든은 그저 오랜 친구일 뿐이다. 내일 아침, 나는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게 우리 관계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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